우리학교이야기_ 2025-8월호

관리자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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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80년 히로시마에서 조선인피폭자 추도모임 첫 개최


<동포피폭자들의 체험을 후세에 이어나가겠다>

히로시마현조선인피폭자협의회(조피협)가 주최하는 <조선반도출신원폭희생자를 추도하는 회>가 2일에 히로시마시 유학생회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조피협이 주최하여 추도행사가 열리는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 조선인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의 진길상 사무국장을 비롯한 동포, 일본시민들 11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조피협의 의하면 원폭이 투하된 1945년 8월 6일 당시 히로시마시 내에는 약 5만 3천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3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생활을 위해, 혹은 강제연행으로 일본에 건너왔습니다. 하지만 현내에는 모든 조선반도 출신 원폭피해자를 추도하는 비석이 없습니다. 현재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 내에는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있으나 조피협에서는 모든 조선반도 출신 원폭피해자를 기리는 추도비를 건립하고 그 자리에서 추도행사를 개최할 것을 지향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조피협은 피폭자의 고령화가 심화된 조건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김진호 회장)는 판단 아래 피폭 80년을 맞으며 올해 처음으로 추도 모임을 개최하였습니다.

 

먼저 원폭 투하로 인하여 희생된 조선반도 출신 피해자들을 위해 참가자들이 묵상하였습니다. 이어서 조피협 관계자 등이 제사를 진행하였으며 국평사의 윤벽암 스님에 의한 독경이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이 헌화를 하였으며 일본인 스님들이 독경하였습니다. 이어 조피협 김진호 회장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김회장은 이날 결성 50주년을 맞은 조피협이 재일조선인피폭자들의 권리 옹호, 국제무대에서의 미국에 대한 책임추궁, 재조피폭자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온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이 운동을 견인해 온 리실근 전회장(고인)의 공적에 대해 회고했습니다. 또한 “일본정부는 국교가 없는것을 구실로 삼아 재조피폭자지원에 소극적이며 아직도 그들은 방치된 상태에 있다”고 하면서 “동포피폭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추도비건립을 위해 온갖 힘을 다하겠다. 조선반도출신자의 피폭체험을 후세에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후 내빈으로서 히로시마현 원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의 미노 마키 토모유키 이사장, 일조 우호 히로시마 현민의 모임의 다카하시 카츠히로 공동대표가 발언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조피협의 권현기 이사(히로시마현청상회 상임간사)가 새세대로서 피폭자들의 뜻을 이어 나갈 결의를 표명하였습니다.



조국해방 80년에 즈음하여 비석을 건립/벳시동산 위령제 2025

 

에히메현 니이하마시에 있는 벳시동산에서 7일 강제연행, 강제노동을 당한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벳시동산 위령제 2025가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강제연행진상조사단 성원들, 국평사의 윤벽암 스님을 포함한 현 내외의 동포들, 일본시민단체 성원들 34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일본의 3대 동산이며 과거에 세이까 광업(현재의 스미또모 광업)이 경영하던 벳시동산의 광업소에는 1939~41년 사이에 약 700명의 조선인들이 강제적으로 연행되었습니다. 벳시동산은 73년에 폐광되었으나, 91년에 결성된 조일 유지들의 조사단이 진상규명활동을 진행한 결과 조선인 희생자들의 무연묘가 발견되었습니다. 관계자들은 93년에 목제 조선인위령비를 건립하였습니다. 위령제는 매해 8월에 진행되었으며, 조국해방 80년을 맞이한 올해 조일 유지들의 협력으로 새로 비석이 건립되었습니다.

위령제에서는 먼저 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묵상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윤벽암스님이 개안 공양을 하였고, 참가자들이 위령비 앞에 조선 반찬과 술을 올리고 향을 피웠습니다.

이후 조일대표들이 인사를 진행했습니다. 에히메현 평화운동센터 오찌 유지 의장(73살)은 비석의 건립이 일조 유지들의 힘으로 실현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소홀히 취급당하여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앞으로도 이 사업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재일조선인 2세 음악가 권길영씨가 제작한 노래를 들으며 묵상을 했습니다.


 

민족교육의 정당성을 되새기며/무상화재판 오사까 지방재판 승소 8주년을 기념하여

 

강연, 토론, 운동제기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집회

<고등학교무상화재판 역사적승소 8주년 기념집회-후세에 넘기는 희망의 바통>(주최=조선고급학교무상화를 요구하는 연락회-오사까, 고교무상화재판 오사까 변호단)이 7월 28일 오사까 시 히가시나리 구민센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동포들과 조선학교 학부모, 지원자, 관계자들 약 250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집회는 2013년부터 일본의 5개 지역에서 진행된 무상화재판에서 유일하게 승소한 오사까 지방재판소 판결(17년 7월 28일)의 의의를 되새기며 참가자들이 민족교육의 밝은 미래를 안아올 결심을 새로이 하기 위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집회에서는 2017년 지방재판소 판결 당일 승소의 소식을 접하고 환호하는 학생, 동포, 지원자들의 모습을 엮은 동영상이 상영된 다음, 도시샤 대학 이타가키 류타 교수의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강사는 <식민주의극복을 위한 <희망의 바통>>을 주제로 인종차별과 식민주의의 극복, 조선학교를 제외하는 논리의 역사성, 민족교육권의 보장이라는 각도에서 지방재판소 승소 판결의 의의에 대하여 해설하였습니다.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는 무상화재판 변호단 단장인 탄바 마사오 변호사, 무상화재판 당시 오사까 조선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현영소씨, 무상화연락회-오사까 오무라 카즈코씨가 발언하였습니다.

현영소씨는 “사법이 민족교육의 정당성을 인정한 역사적인 승소 판결이였다.”며 민족교육의 권리를 위하여 일본유지들과 함께 걸어온 나날을 더듬으면서 앞으로도 민족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기여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이후 승소 판결 당시 조고생이었던 한세령씨, 역대 오사까조고(당시)와 오사까중고 어머니회 회장, 임진혁 변호사가 발언하였습니다. 역대 어머니회 회장을 대표하여 발언한 고기련씨는 “아이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키워주고 그들이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어머니회의 역할이다.”라고 하면서 11년 간의 어머니회 활동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임진혁 변호사는 “승소의 날, 민족교육이 인정되고 자신이 재일조선인으로서 인정되었다는 감정이 들어 눈물이 쏟아져 멈추지 않았다.”며 “조선학교를 고수할 활동을 계속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들이 단념하지 않는 한 조선학교를 지켜낼 수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집회에서는 조선학교를 둘러싼 제도적 차별을 타개하기 위한 운동 제기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앞으로 일본당국과 지방 자지체에 조선학교에 대한 공적조성의 적용을 촉구하는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데서 이날 집회를 운동의 기점으로 하기 위하여 9월에 오사까에서 요청단을 파견하여 문과성과 고도모 가정청에 대한 요청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또한 집회 결의로서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고등학교무상화제도의 적용과 조선 유치반을 유보무상화제도의 대상 시설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한 요청문을 공개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노래 <승리의 그날까지>를 합창하였습니다.

 

유골이 있는 곳으로 추측되는 갱도에 첫 도달/조선의 희생자 유가족을 확인

 

죠세이 탄광에서 5번째 잠수조사

1942년에 발생한 야마구찌현 우베시 죠세이탄광의 수몰사고 희생자들의 유골발굴 및 수집을 위한 잠수조사가 8일에 현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수몰사고에서는 갱도에서 작업하던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총 183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시민단체 <죠세이탄광의 물비상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을 중심으로 작년 10월부터 잠수조사가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로 5번 째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6월에 진행된 조사에서는 탄광과 잇닿은 배수통에서 <주갱도>와 평행하는 <구갱도>를 약 200m 진입하였으며 유골이 있다고 추측되는 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 통로를 통해 진입하여 유골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였습니다.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잠수조사에서 유골은 발굴하지 못하였으나 처음으로 <주갱도>로 추측되는 지점에 도달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새로 두 갈래로 나뉜 통로를 발견하고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양쪽 모두 바위와 목재 등에 의해 차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조사를 통해 <구갱도>를 약 200m 진입한 지점에서 <주갱도>와 잇닿은 통로와 별도의 앞길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잠수조사를 맡은 수중탐험가 이사하루 요시타카씨의 보고에 따르면 향후 조사에서는 <주갱도>에서 발견된 막힌 길을 통과할 수 있는지, 또는 <구갱도>를 더 깊이 진입하여 우회 경로를 통해 <주갱도>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는 8월 25~27일에 진행될 잠수사들에 의한 공동조사에서 “보다 깊이 진입할 것을 보장하는 가스 탱크의 설치, 갱도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측량 등 복수로써 가능한 작업들을 하고 유골발굴에 전진을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사오 오사무씨는 말하였습니다.

이번 조사에는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김정원 사무국차장(야마구찌조사단 사무국장)을 비롯한 동포들과 <새기는 모임> 이노우에 요오코 공동대표를 비롯한 일본시민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조선의 유가족들을 사고현장에

7일에 우베시내에서 진행된 <죠세이탄광 기자들에 의한 토론페스>에서 <새기는 모임> 이노우에 요오코 공동대표가 조선에 본적을 두는 죠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5명중 1명의 유가족을 조선 국내에서 찾아낸 것에 대하여 보고했습니다.

<새기는 모임> 운영위원인 야마구찌 조사단 김정원 사무국장에 의하면 올해 2월 <새기는 모임>은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인강제연행피해자유가족협회에 5명의 명부를 공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국내에서 조사가 진행되어 강원도가 본적지인 희생자 박석기씨의 증손자들을 찾았습니다.

김정원 사무국장은 “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사죄를 포함한 식민지 과거청산은 일본 정부의 책임하에 추진되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조선과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새기는 모임> 이노우에 요오코 공동대표는 “조선의 유가족들이 사고현장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야 한다. 유골발굴을 통해 일조국교정상화의 실현을 위한 돌파구를 열어나갈것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유보무상화적용을 강력히 요구/나가노 3지역에서 가두선전

 

고등학교무상화, 유보무상화적용을 요구하는 가두선전이 나가노 현내 3지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7월 28일에 우에다역 앞, 8월 1일에 마쯔모또역 앞, 8월 4일에 나가노역 앞에서 각각 진행되었습니다. 가두선전은 매해 일조 나가노 현민회의 산하 각 지구단체가 주최하고 있습니다.

우에다역 앞 가두선전에는 일조상소지구의 모임 나카야마 료이치 회장, 마쯔모또역 앞 가두선전에는 일조마츠모토 시민회의 요코우치 유지 회장, 나가노역 앞 가두선전에는 일조 나가노 지구 회의 오히라 료시 회장을 비롯한 인사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참가자들은 계속되는 민족적 차별정책을 하루 빨리 일본 정부가 시정하도록 목소리를 높이면서 전단을 배포하였습니다.

마쯔모또에서 참가한 여성 동포는 “우리가 계속 목소리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부당한 정책에 반대하여 투쟁해 나가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일본정부는 식민지지배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우끼시마마루사건 80돌 추도모임

 

조일 관계자 330명이 참가, 사죄와 보상, 진상규명을 촉구

우끼시마마루사건 80돌 추도모임(주최=우끼시마마루순난자를 추도하는 회, 이하 추도하는 회)가 8월 24일 교또부 마이즈루시의 <순난의 비 공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강제연행진상조사단 진길상 사무국장을 비롯한 동포들과 추도하는 회 시나다 시게루(品田茂)회장을 비롯한 일본시민들 330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우끼시마마루사건이란 1945년 8월 24일 조국해방을 맞으며 귀국하려는 수천명의 조선인들을 태운 일본해군수송선이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폭침되어 549명(일본정부 발표)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80년이 지난 오늘도 정확한 희생자 수나 사건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어 진상규명이 과제로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이 추도모임은 <우끼시마마루순난자추도의 비>가 세워진 1978년부터 매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추도모임에서는 참가자들의 묵상 후에 추도하는 회 시나다 시게루 회장, 니시와끼 다까도시(西脇隆俊) 교또부지사, 가모다 아끼쯔(鴨田秋津) 마이즈루 시장이 추도사를 진행했습니다.

시나다 회장은 우끼시마마루 폭침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라고 하면서 미해결의 과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본 집회에 앞서 조선인강제연행 유가족협회, 후꾸오까 다까마로(福岡資麿)후생 노동대신과 국회의원들, <우끼시마마루시모기따의 회>무라까미 쥬이찌(村上準一) 회장, 조선인 전쟁 희생자 추도회 등에서 추도문을 보내왔음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어서 교또중고 성악부 학생들이 추도가 <해당화 피여나네>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마이즈루 앞바다에 꽃송이를 뿌려 희생자들을 추모하였습니다.

추도하는 회 하시모또 에이지(橋本栄治)사무국장은 “80주년을 맞아도 추도에 끝은 없다. 사건을 풍화시키지 않게 활동해 나가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번 추도모임에서는 추도비에 20개의 화환과 함께 종이 두루미들이 장식되었습니다. 종이 두루미에는 해방을 맞았는데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3000마리에 하나하나 담았다고 합니다.



일본 아동기본법에 조선학교 적용을 촉구하는 세계시민 100만 서명운동


일본은 아동 정책을 사회 전체에 종합적이고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포괄적 기본법인 ‘아동기본법’ 을 2022년 6월에 제정하여 2023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조선학교 학생들입니다


2010년부터 시행된 고등학교수업료 무상화정책에서 제외,

 60여년 이상 지속되어 온 지자체 교육 보조금의 삭감, 동결,

 2019년부터 시행된 유아 교육 · 보육의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

 코로나 팬더믹 속에서 일본 내 모든 학생들이 받던 보조금에서 제외.


조선학교 학생들의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는 일본 정부가 만든 법적, 제도적 차별에 의해 철저히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양심적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이 매일 같이 거리와 재판정에서 목소리 높여 외쳤고, UN에서는 차별을 시정하라고 수차례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차별을 없애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학교는 1945년 해방 직후 500여개에서 2024년 현재 51개교로, 학생수는 4만여 명에서 3천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심각한 재정난으로 학교 운영에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학교 학생들은 '일본 땅에서 조선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교실에서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요구!

일본정부는 국제인권규범에 따른 조선학교에 대한 권고사항을 이행하라! 

일본정부는 아동기본법을 민족차별없이 모든 아동에게 적용하라! 

일본정부는 무상화 교육정책을 조선학교에도 적용하라!


조선학교 학생들이 더 이상 제도적 차별에 신음하지 않도록,

일본 사회에서 당당하고 평등하게 자신의 인권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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